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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전시관(보안과청사): 민족저항실

by Cecilia_J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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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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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홈페이지 : https://sphh.sscmc.or.kr/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근대식 감옥입니다.

1908년 10월부터 1987년까지 약 80년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식민 지배에 맞섰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곳이고,

해방 후에는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했던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혔던 곳입니다.

 

 

서대문형무소는 그 이름이 여러번 바뀌었습니다.

 

1908년 경성감옥

1920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

 

그러다가 서울구치소가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 후 기존 구치소의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하여 몇몇 시설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철거되었습니다.

그 후 1998년 11월 이 곳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여 그 현장과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전시관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시관(보안과청사) : 형무소역사실, 민족저항실 1,2,3, 지하조사실

옥사전시 : 중앙사, 9옥사, 11-12 옥사, 공작사

야외전시 : 한센병사, 사형장, 시구문, 격벽장, 창고, 여옥사, 취사장, 망루.담장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시관(보안과청사), 그 중에서도 민족저항실 1,2,3 의 관람 후기를 남기고자 합니다.

전시관(보안과청사)의 형무소역사실과 지하조사실, 옥사전시, 야외전시 관람 후기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전시관(보안과청사): 형무소역사실 지하조사실

 

[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전시관(보안과청사): 형무소역사실 지하조사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다녀왔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홈페이지 : https://sphh.sscmc.or.kr/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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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야외전시 관람 후기

 

[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야외전시 관람 후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다녀왔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홈페이지 : https://sphh.sscmc.or.kr/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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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옥사전시 관람 후기

 

[서울/서대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옥사전시 관람 후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다녀왔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홈페이지 : https://sphh.sscmc.or.kr/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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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저항실은 1,2,3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민족의 저항, 독립운동

대한제국 말기, 우리 민족은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였고,

1910년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잃은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게 전 민족이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민은 의열투쟁, 비밀결사 조직, 해외 독립군 기지 창건, 독립군 양성, 3.1 독립만세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6.10 만세운동, 대일 무력투쟁 및 사회, 문화, 노동, 농민, 학생운동 등 다양한 방법의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곳 민족저항실에서는 이 과정 속에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또는 순국하였던 독립운동가들과 관련된 주요 사건 및 활동을 중심으로 전시하였습니다.

 

이강년 의병장 관계보고(1907년)

허위 의병장 등 체포의 건(1908년)

이인영 의병장 판결문(1908년)

 

그 당시의 문서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곽한일 의병장 칼(일제강점기)

호신용 지팡이 칼(일제강점기)

 

그 당시 의병활동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무기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910년 강제병합

1904년 한일의정서의 체결로 일제의 군대 주둔,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로 일제의 보호국 전락,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사법권 박탈, 고종 황제 강제 퇴위, 군대 강제 해산 등 일련의 불법적 침략행위로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소위 '한일합방' 으로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강제로 병합되어 국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이후 1945년까지 일제는 총칼을 앞세워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자행하면서 인적, 물적 수탈은 물론 한국민을 노예의 상태로 전락시켰습니다.

또한 언어와 문화를 일본화하여 한국민 자체를 말살하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1910-1945년 독립운동

나라를 빼앗긴 한국민은 더욱 결집하여 국내외에서 치열한 저항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역량의 결집으로 1919년 전 민족이 참여한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되었습니다.

또한 국내외 각지에서 비밀결사 조직과 독립군 등의 활약으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세계만방에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천명하였습니다.

이러한 한국민의 독립운동은 제국주의 침략에 유린당했던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인도주의적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수갑(현대기)

 

이 수갑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수감자 이송시 탈주 방지를 위해 손목에 채웠던 철제 수갑입니다.

 

 

이재명 의사(1887-1910)

강우규 의사(1855-1920)

채경옥 의사(미상-1923)

송학선 의사(1897-1927)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순국되었던 의사 분들입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셨던 분들께 깊이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항일결사 조직과 활동

독립운동가들은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조직을 결성하였고, 이 조직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일제 곤.경 및 주요 요인 처단, 친일 행위자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광복회, 27결사대, 조선민족대동단, 의열단 등의 국내외 비밀결사 조직원들이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옥사 또는 사형으로 순국하였습니다.

 

 

태극기 목각판(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였던 태극기 목각판입니다.

 

 

3.1 독립만세운동과 수감인원의 급증

옥립선언을 발표한 민족대표 33인은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들은 일제의 가혹한 심문에도 의연하게 수감 생활을 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양한묵, 박준승, 손병희열사 등이 모진 고문으로 옥사, 순국하였습니다.

한편,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던 수많은 인사들이 서대문형무소로 끌려와 고초를 당하였습니다.

이시기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인원은 3천여 명에 육박하였고, 이에 당황한 일제는 이를 계기로 서대문형무소의 옥사를 대대적으로 넓혀나갔습니다.

 

민족저항실 두번째 방을 둘러볼 차례입니다.

 

 

독립운동가 수형기록표

이곳은 독립운동가의 기록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되새겨보는 공간입니다.

 

수형기록표는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며 그 원본은 동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수형기록표 만으로도 Memorial hall 의 모든 공간을 꽉 채울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민족저항실 3번째 전시실을 둘러볼 차례입니다.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경성트로이카

1928년 11월 해체되었던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해 1933년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 등이 주축이 되어 '경성트로이카' 를 조직하였습니다.

이 조직을 중심으로 학생, 노동자, 농민들을 규합하여 서울, 경기 각지에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1934년 일경의 대대적인 검거로 120여명의 조직원이 체포되어 조직이 와해되었습니다.

 

 

이후 이재유의 지도하에 경성콤그룹, 경성준기그룹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한편 이재유는 1936년 12월 창동역에서 잠복 중인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청주형무소로 이감, 1944년 옥사 순국하였습니다.

 

간도지역 항일운동 간도공산당

1927년 10월부터 1930년 5월까지 간도지역에서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이 대대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자,

일제는 총 5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탄압하였고 관련자들을 검거하였습니다.

특히 1930년 5월의 제4차 간도공산당 사건은 1개월동안 간도 전역에 걸친 격렬한 항일 시위로 발전하였고, 5월 30일에는 소위 '간도 5.30 폭동' 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일제의 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출장소, 철도, 교량 등이 파괴되었고, 친일 부호 처단 등 대대적인 항일무력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약 5,000명이 체포되었으며 300여 명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가운데 주현갑 등 18명의 관련자들이 1936년 7월 21일과 2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해 순국하였습니다.

 

 

파업 항일투쟁 원산 총파업

1928년 9월, 함남 덕원군에 소재한 영국인 소유 라이징선석유회사에서 일본인 현장 감독 고다마가 한국인 노동자 박준업을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1929년 1월부터 4월 사이 80여 일간 원산노동연합회의 문평석유 노동자, 원산부두 노종자 등 3천여명의 노동자들이 국내 최대의 항일 파업 노동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원산에서 일어난 이 총파업은 노동운동사상 처음으로 1개 도시 전체를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뜨려 일제에 가장 큰 타격을 가한 투쟁이었습니다.

또한 노동자와 시민이 일본인 자본가를 상대로 벌인 가장 큰 항일투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3.1 독립만세운동 직후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명실공히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최고 지휘부가 되어 연통제를 실시해 국내의 독립운동 연락망을 구축하였습니다.

또한 외교,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40년 9월에는 광복군을 창설하여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일전쟁을 전개하는 등 광복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활약하였던 많은 임시정보 요인들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그 중 여러명이 옥중 순국하였습니다.

 

제2의 만세운동, 6.10 만세운동

6.10 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각계각층의 다양한 독립운동 세력이 연합하여 펼친 만세시위운동입니다.

순종의 인산일, 약 30여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5~600여 명의 학생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하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지방 곳곳에서도 만세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위로 서울에서 212명이 체포되었고 권오설, 권오상, 이선호, 유면희를 비롯한 대부분의 관련자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권오설 열사가 1930년 4월 옥사하였는데, 일제는 고문 흔적을 감추고 열사의 혼마저 가두어 버리고자 시신을 철로 된 관으로 봉인하고 유족에게 인계해 끝내 열어보지 못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사형장 지하 시신수습실 모형

이 구조물은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 지하 시신수습실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입니다.

이곳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수백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형장의 이슬로 산화하였습니다.

또한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기 민주화 운동가들이 희생당했던 장소입니다.

 

 

되찾은 조국, 광복의 환희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일제로부터 조국을 되찾았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 36년 동안 한국민은 전 민족의 역량을 모아 치열하게 일제와 맞서 싸웠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그 독립운동 역사의 한 가운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의 민족정신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또한 광복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암울하게 했던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였던 인사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대문형무소는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빼앗긴 한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80년 여정을 달려왔습니다.

이제 이곳 서대문 형무소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나 국내외 유사한 박물관들과 함께 과거의 반성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람이었습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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