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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중구] 숭례문 - 대한민국 국보 제 1호, 남대문의 역사

by Cecilia_J 2024.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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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우리나라 국보 제 1호, 숭례문(崇禮門) 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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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중요한 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사실 숭례문은 '남대문' 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서울의 옛 성곽인 한양도성의 8개 주요 문 중 하나로, 그 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보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는 숭례문,
그동안 숭례문 앞을 자주 지나다니기는 했는데 숭례문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인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숭례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 합니다.
 

 

숭례문은 1396년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한양으로 수도를 정한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숭례'라는 이름은 '예를 숭상하고, 나라를 위하는 문'이라는 의미인데요,

한양도성의 남쪽에 위치한 주요 성문인 숭례문.

왕궁인 경복궁과 더불어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이었습니다.


숭례문은 처음에는 '남대문(南大門)' 이라고 불렸지만 1962년에 '숭례문'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숭례문은 왕이 성곽을 통과할 때나 외교적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신분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1592년~1598년) 기간 동안 숭례문은 일본군의 침략에 의해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문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동안 숭례문은 일본의 통치 아래에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일제는 많은 한국의 역사적 유산을 훼손하고 제거하려 했으나 숭례문은 여전히 민족의 자부심과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숭례문이 헐릴 위기도 있었으나 국민들의 대규모 반대로 다행히 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숭례문은 193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되었는데요,

이때의 문화재 지정을 참고하여 1962년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 1호로 재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 1호 숭례문,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은 방화로 인해 크게 불에 타면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화재로 숭례문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당시 저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숭례문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시민들의 힘을 합쳐 숭례문 복원 작업을 시작하였고, 2013년에는 완전히 복원되어 다시 개방되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가능한 한 원래의 형태와 재료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으며 그 결과 숭례문은 다시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화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민족적 자긍심을 대표하는 중요한 상징물인 숭례문.

그동안은 이 앞을 바쁘게 지나다니기만 했는데 다음에는 숭례문 아래를 걸어보며 우리나라의 국보 1호를 찬찬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숭례문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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